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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음치가수 이재수의 성공으로 본 대중문화의 단면

by 처음처럼5 2009.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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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7월 7일에 쓴 글입니다.

 한 인터넷 방송국의 음악프로그램에서 아름다운 통기타 선율과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자유로운(?) 음정으로 스콜피언스의 'Still Loving You"를 불러 일약 대중의 인식에 각인된 한 가수가 있다. 방송국에서 앞다투어 출연을 요청하고, 급기야 스타덤의 잣대인 CF에도 출연했다.

음치가수 '이재수'. 그를 따라 다니는 호와 같은 수식어는 음치가수란 네음절이 되었다. 그가 이렇게 성공 - 사실, 속된 표현으로 하자면 '뜨게된'이 더 맞을 것 -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여기서 대중문화의 한 단면인 'Pseudo-Image (의사 이미지) Making'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대중문화 속에는 여러 가지 단면과 속성이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급격한 문화의 변이를 경험하게 된다. 인터넷의 급속한 발달과 대중매체의 근거리성으로 대중문화는 더 이상의 남의 것이 아니다. 생각과 재능만 있으면 누구라도 PC 한 대로 방송국을 만들어 전세계에 내보낼 수가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대중문화의 변이는 신속하다. 내년에는 훨씬 더 달라질 것이다. 유행이란 단어도 잘 어울리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어제의 유행이 내일의 전통이 되어버리기도 할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재수의 성공에는 'Pseudo Image Making'이란 대중문화의 한 단면이 들어있다. 'Pseudo Image'라 함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영웅이 필요한 시대에 갖가지 언론활동과 선전 등을 통하여 영웅을 만들었다면 그가 바로 이 'Pseudo Image'가 되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홍길동이나 과거 프로이센의 ' 윌리엄 텔'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이재수는 스타가 될 수 있는 어떤 상식적인 조건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외모가 뛰어난 것도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고음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감정처리만 노력하는 흔히 노래방에서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일개인이었다. 그런 그가 어떤 계기에 의해서든지 잘못된 노래로 인해서 대중에게 인식이 되고, 그는 계속해서 그런 모습을 요구받게 된다. 대중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싫든 좋든 간에 그는 망가진 모습만을 만들어간다. 설사 그가 잘 부르는 노래가 있다 하더라도 그건 뉴스거리가 못된다.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KBS에서 기획, 제작한 5부작의 다큐멘터리 인간극장 '이재수' 편에서 그의 진지한 고뇌를 엿볼 수 있다. 대학교 때까지 한 락그룹의 보컬로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음을 잡지 못하게 되고, 결국 그 생활을 떠나게 된다.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계속해서 노력하는 흔적에서 엿볼 수 있다. 음치 교정을 애쓰고,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전공하는 동생을 위해 신디싸이져를 사 주는 모습에서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잘 볼 수 있다.

그가 음을 틀려가면서 부르는 노래를 항상 즐기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노래 잘 부르는 가수와 무대에 섰을 때 그들의 시선이 무척이나 부담스럽다고 한다. '저들이 나를 가수로 인정할까' '혹시 비웃지 않을까' 사소한 코웃음에도 무척이나 민감할 것이다. 그런 그가 계속 'Still Loving You'를 부르고 있다. 대중이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 가짜 이미지, 그것을 대중은 즐기고 원하고 있다. 그의 성공은 일순간에 끝날 것이다. 대중은 그만큼 쉽게 식상해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하면 도태되고 만다. 그의 후배가 얘기한다. '지금의 인기는 한순간이다. 뭔가 더 길게 인식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더 이상 망가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음치클리닉에 등록한다.

소위 스타라고 말하는 TV 속의 그들은 모두가 한 두 가지 이상의 'Pseudo Image'를 만들며 살고 있다. 예쁘고 착하게만 보던 여자 연애인을 직접 만나 본 후 실망하는 팬들이 많이 있는 이유도 대중은 'Pseudo Image'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무대 위의 화려한 스팟라이트 뒤에서 대마초를 피워 대며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해 하는 그들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스타이다. 자신이 원해서가 아닌 대중이 원해서 만들어 가는 이미지는 괴롭기 짝이 없다. 매스 미디어 속의 스타를 동경할 필요는 없다. 한 순간이며, 일시적인 영화만을 누리는 그들은 들판 한 구석에 피어난 들꽃보다 화려하지 못했던 솔로몬의 모든 영화에도 못미치기 때문이다.

- KBS의 다큐멘터리 인간극장 '음치가수 이재수' 5부작을 보고서 2001. 7.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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