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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Life/이것저것

소설 '열흘 간의 낯선 바람'을 읽고

by 처음처럼5 2017.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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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딸아이가 독서록을 쓰기 위해 사다 놓은 책이 눈에 띄어 출퇴근길에 열심히 읽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고 감명적이었다. 시간을 내어 간략하게 감상평을 적어본다.

 

 

열흘 간의 낯선 바람’. 이 책을 읽고 있는 반나절 동안 나자신도 주인공 이든과 함께 몽골 고비사막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함께 맞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가질 수 있었다. 가로등이나 빌딩 불빛 하나 없는 칠흑같은 사막의 어둠 속에서 땅으로 쏟아질 듯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처음에는 다소 불편했던 낯선 이들과의 대화. 그렇다. 이 소설은 손바닥 위 세상이 아닌 실제 사람 사는 세상에서 만난 낯선 이들이 열흘 동안의 몽골 여행을 통해 꼭꼭 숨겨 두었던 각자의 상처를 들추어 내고 바람이 모래 위 흔적들을 지우 듯이 서로의 아픔을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리는 따뜻한 이야기이다. 기행문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여행의 감상이나 아름다운 풍경을 나열하는 이야기도 아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이 사회에 그리고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중고생 또래의 청소년들에게 하고싶은 말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우선, 소통이 부족한 젊은 세대들을 질타하고 있다. 주인공 이든이 포토샵을 통해 초록마녀가 되고 친구 빛나는 SNS 악성 댓글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우석 오빠는 상대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는 사람과 사이버 연애를 경험했고, 허단은 운동을 포기하고 공부를 하려고 하지만 동급생들에게 왕따를 당한다. 이 모든 것이 외모와 성적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현실 세계에 거대한 벽을 쌓고 가상의 세계에 새로운 아바타를 만들어 세상과 얘기하려고 하는 현재 이 사회의 젊은 세대들의 잘못된 소통 방식에서 기인한다. 누군가 장난 삼아 얘기했다. “나는 접속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만약 데카르트가 이 말을 듣는다면 까무라칠 노릇이다. 생각이 들어가야 할 자리를 접속이 대신하고 있다. 우리 젊은 친구들은 생각하기 싫어하고 검색하고 싶어한다. 휴대폰이 없으면 불안하고 답답해지며, 마치 세상이 나를 제외하고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작가는 이와 함께 기성 세대의 잘못도 함께 드러내고 있다. 치매에 걸린 노모를 요양원으로 보내려고 하는 자식들, 학교의 명예를 위해 학생들을 가혹하게 훈련시키는 럭비 코치 선생님, 아내보다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 양육을 포기하는 아빠.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런 어른들의 행동이 당연하다고 여겨질 만큼 이 사회는 병들어 있는 것 같다. 젊은 세대 사이의 소통도 막혀 있지만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와의 소통도 뭔가 단절되어 있음에 틀림 없다. 핑크할머니의 외침이 가슴 속에 남는다. “거미만도 못한 자식들…” 더위에 지쳐 쓰러진 어린 말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고비 사막의 말떼들 보다 못한 우리 인간의 씁슬한 자화상이 보여지는 것 같아 나도 가슴이 먹먹해 온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도 희망이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그 희망을 애기하고 있다. 첫째, 진정한 친구이다. 이든의 엄마는 이든에게 여행의 과제로 새로운 친구를 사귈 것을 주문했다. 이든과 핑크할머니, 허단, 우석 오빠는 자신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서로 간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우석 오빠의 사이버 애인, 이든의 페이스북 팬들, 그리고 빛나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들은 위로와 행복을 주는 대상이라고 믿었지만 사실은 이와 달랐다. 진정한 위로는 얼굴을 맞대는 관계에 있음을. 그리고 자신의 꾸며진 모습을 보여줄 때가 아니라 솔직한 모습을 드러낼 때 받을 수 있는 것임을 이든과 그 친구들은 깊이 깨닫게 된다. 둘째, 경청이다. 이들을 치유한 것은 서로가 서로의 얘기를 깊이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남의 얘기를 듣는 것보다 나자신의 얘기를 하려고만 했다. 실시간 댓글을 달지 못하는 낯선사람게임이 조급한 우리 세대에게 바로 이 경청의 능력을 가르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랑이다. 이 사랑은 이타적인 사랑이다. 핑크할머니가 만난 새로운 사랑, 허몽과 이든 엄마의 자식에 대한 깊은 사랑이 따뜻하게 그려지며 각자 가졌던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돕는 힘으로 작동한다. 여행 막바지에 핑크할머니가 매사에 서로 대립했던 다른 할머니의 체증을 치료해 주면서 그들의 갈등이 해소되는 것도 배려와 사랑의 힘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자신도 두 아이의 아빠로서 우리 아이들이 진정한 친구가 있는지, 다른 사람의 말을 깊이 들어주는지, 그리고 남들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아이들로 키우고 있는건지 다시 한 번 돌이켜보게 되었다. 이든이 여행 후 남겼던 감상을 빛나 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도 얘기해 주고 싶다.빛나가 살아 있어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세상은 손바닥 위, 작은 기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밖에 있다는 것을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손바닥 안으로 숨으면 숨을수록 커지는 것이 아니라 작아진다는 것을 빛나가 알았다면 지금쯤 나와…” 그래. 휴대폰 안에 모든 세상이 다 들어있는 것처럼 착각하지 말고 휴대폰 안으로 숨지말고 당당하게 세상에서 진정한 친구를 만나고 또 다른 사람의 말을 잘 경청하고 사랑을 나누어주는 그런 친구가 되라고 얘기해 주겠다. 아울러, 시간이 허락한다면 나자신에게도 이런 특별한 여행을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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